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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초충도
최경아 2019-08-13 11:17:39 조회 342

 

 

 


 

 

초충도(초충도 앞에서)

 

 

 

 

오죽烏竹 사이로 비낀 느릿한 해그림자

하늘빛 바람빛 그윽한 빛잔치에

풀벌레 바스라지듯 뜰안에 날아들었다.


꿈틀꿈틀 허울허울 낯선 몸부림

투명한 첫 날개 천지가 갈라지더니

생명의 환희 울려퍼졌다.


켜켜이 쌓인 그리움 토해내는

적멸寂滅의 순간이여!
생사와 희노애락이 인간계만 있더냐
 

아득한 미지의 세계로 접어들다

달 그늘 아로진 대청마루에 쪽잠 들면  

한줄기 봄바람에,


이윽고 회향선계回向仙界라

 

 

***

 

 

 신사임당의 초충도 앞에 서면 아주 깊은 고요 속으로 빠져든다.

그 조용한 한 가운데에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어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쑤욱 옮기게 된다.

외부의 막을 벗어나 그림안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찰나

지금까지와 다른 공기입자가 느껴지며 갖가지 생명들이 부산을 떨기 시작한다.

붉고 탐스러운 꽃이라고 주연이라 뽐내지 않고 작은 벌레라고 더더욱

엑스트라는 아니다.

누구도 주연과 조연으로 구분되지 않는 세계

오로지 자신이 받은 명(命)을 받들어 움직이고 소리 내고 헐떡거리며

밭은 숨을 몰아쉰다.

이방인의 시선은 아랑곳없다는 듯 엄중하고도 거대한 질서대로

자신의 생에 몰입해서 밝은 생명을 발산한다.

 

 

 

오죽헌에 갔을 때 숨죽이며 보았던 신사임당의 그림, 초충도.

그 그림 앞에서 난 이방인으로서의 초라함을 느꼈다.

작고 위대한(여기에서 위대함이란 본연의 생명에 온전히 충실했을 때의 크기)

곤충 앞에서 먼지처럼 작아짐을 실감했고 동시에,

흙 내음 배어나는 하는 그림 앞에서 자상한 어머니의 따스한 미소를 보았다.

 


 

-<초충도_맨드라미와 소똥벌레> 

 

그만큼 그림속의 주인공들은 살아있었고 그 자체로써 대단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시공간을 흔드는 호탕한 웃음소리 품안에 있었다.

마치 온 우주를 만들어낸 그 분이 자신의 피조물을 보고 대견스레 '하하하!' 웃듯이.

그 대견함과 기특함 속에 꽃이 피어나고 오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소똥벌레가

뗑그르르 소똥을 굴렸다.

천지를 진동하는 매미울음과 천연덕스러운 개구리의 표정이 얽히어

그들만의 생을 창조해 가고 있었다. 그 생 앞에 넋 놓고 감탄하고 있었다.

 

 

 

-<초충도_수박과 들쥐> 

 

헐벗은 매미의 자지러지는 울음와 사마귀의 희화적인 조소,

털복숭이 맨드라미의 새초롬한 자태와 수박의 기분 째지는 시원한 웃음소리,

음탕한 들쥐마저 친근했다.

이 얼마나 경건하고 치열하고 즐거운 생인가!

 

 

이를 붓 끝으로 잡아낸 신사임당의 잔잔하게 퍼지는 따뜻한 어머니 미소가

더욱 더 생기 있게 길러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제기하고 싶은 의문!

신사임당 하면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거론하지만

진실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본명은 신인선, 사임당은 당호이며, 사임당 외에도 시임당·임사제라고도 하였다.

동쪽 끝 강릉의 북평에서 태어난 신사임당은 연산군의 폭정정치 십 년이 지난 1504년

갑자사화가 있던 갑자년 10월 29일에 태어났다.

부친인 신명화는 고려 태조 때 충신 신숭겸의 18대손에 조상대대로 좌의정, 대사성,

영월 군수를 지낸 양반댁 자제였다.

인선은 두어 살 때부터 사금파리 조각으로 꽃과 나비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조부인 이사온은 손녀를 위해 물감, 종이, 붓을 사주었다고 한다.

7살 때부터는 스승이 없이 그림을 그렸고 세종 때 이름 높았던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안견의 산수화를 그대로 베껴 그려

주변인들을 놀라게 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송상기[宋相琦:조선 후기 문신]의 『옥오재집』에 전해지는 재미있는 일화를 보면,

벽장칸에 보관했던 사임당의 그림이 눅눅해져 볕을 쬐게 하려고 마당에 내다놓았더니

난데없이 닭 한 마리가 달려들어 그림을 콕콕 쪼아대니 풀벌레 그려진 곳이

너덜너덜해졌다니.

얼마나 생생하게 그렸었고 당시 그림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짐작할 만하다.

 

 

사임당이 유년시절을 보낸 북평에는 유난히 감나무, 포도나무가 많아

포도가 그림의 소재로 자주 쓰이기도 했는데 훗날 율곡은,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포도를 얼마나 잘 그리셨던지 이 세상에 비길 만한 이가

없었다.’ 라고 했을 정도다.

 



 

-<포도도> 

 

‘신사임당은 어려서 그림공부를 했는데 그녀의 포도와 산수는 절묘하여

평하는 이들이 세종 때 안견 다음간다고들 한다.’

이는 어숙권[魚叔權;조선 중기 학자]의 『패관잡기』에는 전해지는 대목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잔칫날 비단 치마에 국 대접을 엎어 치마를 버렸다며 난처해하는 처자를 보고

사임당은 주인집 벼루와 붓을 빌려 얼룩 위에 싱그러운 포도넝쿨을 그려

흉했던 비단 치마를 장에 비싼 값에 내다팔 수 있게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림에 대한 자신감, 상황을 훌륭히 대처해내는 능력, 곤란에 빠진 이를 돕는

깊은 마음을 엿보게 한다.

 

사임당이란 호는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 부인을 본받는다는 뜻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이처럼 전해지는 것과는 달리 부모가 내려주신 호이며

그 사람에게 이름 짓게 된 이상 이름으로서의 의미 외의 다른 뜻은 없다고 한다.

 

 

이후 사임당은 가난한 양반인 이원수와 혼인하게 되지만 지아비만 바라보는

그 당시의 여자들의 보편적인 삶보다는 예술과 학문을 닦으며 예술가로서

한 인간의 삶을 굳건히 견지하게 된다.

 

 

당시 이름 날리던 화가들의 그림의 소재는 드높은 산, 깊은 계곡, 긴 강줄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사임당의 그림은 그다지 귀하게 여기지 않는 곤충이나 벌레 같이

작은 몸에서 품어내는 힘, 생명을 발견해내어 친근하고도 참신한 시각으로

세상에 소리없이 어우러져 각 용처에 맞게 살아가는 요소들에 다시금 눈뜨게 했다.

 

 

사임당은 자신의 고향인 강릉을 늘 동경했는데 북평의 뜰 안에서 몇 날 몇 일이고

손톱만한 작은 벌레의 움직임 하나하나 포착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리고 또 그렸던

그의 자연에 대한 경외심, 하찮아 보이는 곤충일지라도 생명에 대한 지극한 성찰,

조화로운 시선을 엿보게 한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녀의 주변이 얼마나 덕이 넘치고

조화로울 수 있었는지 능히 추측이 어렵지 않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이원수의 친구들이 몰려오자 아내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이원수는 아내에게 그림을 그려 내오라 채근했다. 사임당은 작은 유기(놋) 쟁반에

주렁주렁 열린 포도송이를 그려 내었는데 이를 두고

효종 때 학자 우암 송시열[宋時烈;조선 후기 문신, 학자]은,

‘그 뜻인즉 만일 종이나 비단에 그린다면 남들이 그것을 가지고 갈 것이니

유기 쟁반에 그려 내었으니 과연 점잖은 부인네의 하는 일이다.’

며 신사임당의 혜안을 칭송하였다.

 

 

시냇물 굽이굽이 산은 첨첨 둘러 있고

바위 길에 늙은 나무 감돌아 길이 났네

숲에는 아지랑이 자욱이 끼었는데

돛대는 구름 밖에 뵐락말락 하는구나

해질녘 도인 하나 나무다리 지나가고

막 송에선 늙은 중이 한가로이 바둑두네

꽃다운 그 마음은 신과 함께 열렸나니

묘한 생각 맑은 자취 따라잡기 어려워라

 

 

 

1548년 소세양[蘇世讓:조선 중기 문신]은 신사임당의 산수화에 감화 받아

이렇게 시를 읊기도 했으니 그 당시 예술가로서의 확고한 위치에 오르지 않고서야

당시 시대상으로 비춰볼 때, 아낙네를 이리 입 다투어 칭송하진 않았으리라.

 

 

사임당은 그림 뿐 아니라 시문도 뛰어났는데 시어머니 홍씨의 부름으로 한양으로 가면서

대관령 고갯마루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애절한 마음을 시로 남겼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한양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평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에 살아 내리네

 

 

율곡은 어머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어머님께서는 평소에 늘 친정 강릉을 그리며 깊은 밤 사람들이 조용해지면

종종 우셨고, 어느 때는 밤을 꼬박 새우시기도 하셨다.”

 

 

고향을 그리는 또 한 편의 시를 보면,

 

 

산 첩첩 내 고향 천 리이건만

자나깨나 꿈 속에서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흩어졌다 모이고

고깃배는 바다 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고향길 다시 밞아 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할까

 

 

율곡을 낳은 어머니 이전에 고향을 애타게 그리며 모친을 생각하며 붓을 쥐고

먹물이 닳도록 그림을 그렸던 한 인간의 고귀한 수도자적이기까지 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학자 이이의 영원한 지주이자 어수선한 시대를 내면으로 승화시켜

길이길이 후세에 정신적 유산으로 남겨준 신사임당의 삶.

자기 안으로의 그리움의 승화와 예술혼의 극치를 글과 말로 교육하기 이전에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가를 몸소 보여주었기에 율곡 같은 대학자가

나오게 된 것은 아닌지!

 

 

그녀를 어찌 현모양처라는 말로 한정시킬 수 있을까?

마흔 여덟 짧은 생이었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시서화라는 재능으로

스스로 빛을 발하므로써 시대의 부속품이 될 수 밖에 없던 여자의 삶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살아간 지혜로움과 당당함,

붓을 통해 자연의 섭리를 세밀하게 읽어낸 

탁월한 감각과 표현능력,

남편과 자식에 대한 현명한 내조와 가르침, 

한 사람의 생을 아름답게 기리고 닮고 싶어하는 남겨진 자들의 몫인 깊은 여운까지.

 

그 화폭 안에 생명들은 영원히 생명을 얻었듯이

그림 속에 살아 움직이는 붓 한 획을 따라 그녀가 걷고자 했던

남다른 삶의 모습을 지켜내는 단단하고 현명한 자취를 북평의 뜰 안자락의

고귀한 경지로 접속시키는 조용한 혁명가는 아닐는지…

 

 

그녀가 세세토록 남기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초충도를 앞에 두고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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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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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식
    • 2019-09-09 23:13

    군데군데 그림이 안보여요^^
    왠지 멋있는 그림이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