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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 만들기
최경아 2019-07-25 10:45:26 조회 273




  

 

노환으로 병치레를 하시는 아버님을 뵙기 위해 서울 다녀올 일이 생겼다. 우선적으로 신경 쓰이는 게 옷차림이었다. 보은에 정착한 이후 움직이고 일하기에 편한 복장에 익숙해졌다. 도시의 시선에 이상하지 않을 정도만큼의 적당한, 그러면서 활동하기에 무리가 없는 옷을 찾아 입었다.

시골에 살면서 따가운 볕에 낯빛은 나날이 그을리고 예전과 달리 옷이 몸에 착 달라붙는 건 참을 수 없으니. 나와 옷이 따로 노는 서글픈 언바란스를 어찌하랴.

 

오랜만의 방문이어서 일까? 서울은 몇 년 전 보다 더 높아지고 단단해지고 비좁아 보였다. 이른 새벽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신령스러운 물안개 대신, 퀴퀴한 회색빛 미세먼지가 점령하고 있었다. 눈이 시원해지던 짙푸른 산줄기 대신 시멘트 빌딩이 굽이굽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풋풋한 풀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것, 자연의 최고 자장가인 풀벌레들의 합창이 없다는 것, 뜨거운 여름 오후 머릿속까지 관통하는 골짜기의 시원한 얼음바람이 없다는 것, 심장소리마저 숨죽이는 고요한 정적이 없다는 것.

나의 일부인양 익숙해진 것들을 찾을 수 없어 두리번거리는 모양은 흡사 다른 별에서 잠깐 불시착한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발전을 어색해하고 편리를 불편해하고 넘치는 풍요가 어쩐지 부담스러운,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치고 있는 기분 그대로.

 

우리는 도시의 효용가치가 있는 것들로 촘촘히 채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을까? 과열경쟁에 심신은 점점 고달파지고 기약 없는 내일의 보장을 위해 현재의 나를 온통 내어주고 살아가고 있는 형상이다. 과도하게 많은 일들을 하고, 너무 많은 인간관계에 시달리고, 넘치는 생활용품으로 떠내려갈 지경에다가, 쓸데없는 생각과 걱정들은 영혼을 곰삭고, 조절 안 되는 감정들에 잠식당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답답증을 느끼던 때 우연찮게 도시를 떠나게 되었고, 이후 무엇을 채우기보다는 덜어낸 빈 공간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내 삶에 선선한 바람이 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으니까.

 

 

 




가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구를 펼쳤다가 안개에 휩싸인 고즈넉한 산의 정취에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 붓을 놓는다. 자연이 보여주는 경이로움에 한 점 보태기조차 매우 송구스러운 까닭이다.

옛 글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람은 하늘과 땅의 마음을 가진 존재(人者天地地心也)”라고 하였다. 하늘과 땅을 가까이 하고 살아갈 때 사람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먹기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하늘만큼 높을 수 있고 땅 만큼 두루 넓게 품을 수 있다는 뜻이리라. 하늘과 땅이 지닌 지고한 뜻과 덕을 따라갈 순 없어도 내 삶의 여백에 담아둘 수 있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조금이나마 닮을 수 있진 않을까.

 

서울에서 내려오자마자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고 도시의 메케한 공기를 몰아내며 심신을 이완했다. 끝없는 아스팔트 대신 푸르른 창공이 거침없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의 역사 훨씬 이전부터 만물을 길러낸 땅을 딛고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내 평정심이 찾아왔다.

 

아버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보드라운 흙냄새를 맡으시면 아마도 병이 천리 밖으로 달아날 터이니 이곳으로 얼른 내려오시라고.

 



 




 

                                                                        최경아 · 명상작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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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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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식
    • 2019-09-09 23:14

    명상을 직접해 볼 수 있는 mp3 파일이 있으면 좋겠네요^^